즉 소멸과 망각에 대한 최후의 방파제로서 기능한다는 매우 고전적인 미학이 그 밑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없어하는 작가가 어디 신경숙뿐이겠는가. 그의 인물들은 흔히 “언젠가 이와 똑같은 풍경이 제 삶을 뚫고 지나간 적이 있음을, 변용시키고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 반성에 뒤이어 이 작중화자는 “글을 쓰는 일이란 이미 누군가에게 잊혀졌거나 누군가를 잊어본 마음 연약한 자가 의지하는 마지막 보루 같다는 생각”을 피력한다.신경숙 소설을 읽고 다운받기 신경숙 소설을 읽고. 그는 그 깊은 ‘우물’을 통하여, 『풍금이 있던 자리』, 우연성 : 「멀리, “세면장에 들어가 변기 위에 막 앉으려고 하다가” 느닷없이 솟아오르는 기억의 섬광에 정신이 팔려 수돗물은 잠시 흐르기를 멈추고 집의 열쇠구멍에 열쇠는 그대로 꽂혀 있다. 신경숙은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정읍 출신의 프루스트다..hwp (다운받기). 그만큼 인생은 덧없고 시간의 파괴력은 가차없는 것이다..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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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소설을 읽고
그러나 위의 인용문에서 강조되고 있는 쪽은 소설 쓰기의 시점이나 인칭 그 자체라기보다는 자신을 겉으로 내세우지 못한 채 다른 존재나 형식 속에 ...
그러나 위의 인용문에서 강조되고 있는 쪽은 소설 쓰기의 시점이나 인칭 그 자체라기보다는 자신을 겉으로 내세우지 못한 채 다른 존재나 형식 속에 숨으려 하는 작가 자신의 ‘자신없어하는’ 성향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반성에 뒤이어 이 작중화자는 “글을 쓰는 일이란 이미 누군가에게 잊혀졌거나 누군가를 잊어본 마음 연약한 자가 의지하는 마지막 보루 같다는 생각”을 피력한다. 결국 글쓰기는 흘러서 지나가고 사라져버리는 삶, 즉 소멸과 망각에 대한 최후의 방파제로서 기능한다는 매우 고전적인 미학이 그 밑에 깔려 있는 것이다. 신경숙은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정읍 출신의 프루스트다. 다만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얼마만큼이나 그같은 보루, 혹은 방파제의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자신없어”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없어하는 작가가 어디 신경숙뿐이겠는가. 그만큼 인생은 덧없고 시간의 파괴력은 가차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소멸로 부터의 삶을 방어하는 구실에 ‘자신’은 없다 해도, 글쓰기만이 그 ‘마지막’ 보루라는 점, 그리고 그 ‘보루’의 표면에 나타나 있건 뒤에 숨어 있건, 글을 쓸 때 작가가 가장 큰 관심을 갖는 대상은 언제나 자신이 살아온 삶과 경험, 특히 자신의 내면에 깊이 잠긴 ‘과거의 기억’이란 점에는 변함이 없다. 신경숙에게 있어서 글쓰기라는 ‘보루’는 흘러가는 시간의 위협 속에 놓인 ‘나’를 담는 장소 혹은 숨기는 장소인 것이다.
사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경숙만큼 작가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깊고 넓게, 그리고 빈번히 작품 속에 수용, 용해, 변용시키고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작가와 체험 사이의 관계는 “보바리 부인은 나 자신이다”라고 강조한 플로베르의 경우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다. 이는 그의 초기의 소설집만이 아니라 그가 쓴 모든 작품에 다 같이 적용될 수 있는 현상이다. 신경숙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들로 우회하여 인간 공통의 문제를 표현하는 리얼리스트가 아니다.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면에 깊이 매몰되어 있는 자아와 기억의 ‘우물’이다. 그 속에는 쇠스랑도 브로치도 잠겨 있지만 그 수면에 별이 뜰 수도 있다. 그는 그 깊은 ‘우물’을 통하여, 그 ‘깊은 슬픔’을 통하여 타자와 세계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신경숙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 특별한 취재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칠레를 여행한다 해도 그 나라에 대해서 아는 것은 영화 <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린다> 정도이고 페루에 대해서 아는 것은 ‘상식’이나 번역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정도에 그친다. 그의 진정한 취재 대상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잠겨 있는 기억의 세계다. 신경숙 특유의 서술 전략을 결정하는 것은 기억의 특수한 성격(돌발성, 비과학성, 익명성, 우연성 : 「멀리, 끝없는 길 위에」, 『풍금이 있던 자리』, 282쪽)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빈집의 현관문에 열쇠를 꽂다가, 길을 걸어가다가, “세면장에 들어가 변기 위에 막 앉으려고 하다가” 느닷없이 솟아오르는 기억의 섬광에 정신이 팔려 수돗물은 잠시 흐르기를 멈추고 집의 열쇠구멍에 열쇠는 그대로 꽂혀 있다. 그러나 기억이 솟아나는 방식이 늘 우발적인 것은 아니다. 흔히 그것은 과거의 어떤 정황이 유사하게 반복되는 순간 ‘연상 작용’에 의하여 솟아오른다. 그의 인물들은 흔히 “언젠가 이와 똑같은 풍경이 제 삶을 뚫고 지나간 적이 있음을, 저는 기억해낸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경숙은 “글을 쓰려 의식적으로 더듬는 기억은 자연스럽지 못했고, 그렇다고 매번 하찮은 우연에 기댈 수도 없었다”고 술회한다.(「멀리, 끝없는 길 위에」, 『풍금이 있던 자리』, 282~283쪽) “아스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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